의미 거리: 의미 공간에서의 거리. 다분히 상징적인 개념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충분히 많은 사람에게 두 개념이 얼마나 비슷한지를 주관적으로 평가하게 한 후 평균을 취하는 것’과 같은 식의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를 생각할 수 있음. 물론 두 개념이 다른 언어로 표현되어 있을 때 답을 하는 대상을 두 언어에 충분히 능숙한 이들로 한정해야 함. (이효석 주)
물론 이런 ‘의미거리의 최소화’를 이루는 데는 여러 가지 본질적인 어려움이 있는데, 두 언어 사이의 한계, 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표현에 대해 서로 다른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개인차,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달라지는 시차 등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훔볼트는 “두 언어 사이에 동의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유의어만 존재할 뿐이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우치다 타츠루는 오히려 이 한계에 의해 새로운 지식이 태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 주장은 퍼스가 말한, 새로운 지식이 생겨나는 논리인 ‘가추법’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입니다.
다소 말이 길었습니다만, 질문에 답을 드리자면, ‘저자의 의도가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는가’를 번역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고, 목표나마 거창하게, 답하고 싶습니다.
- 국제/정치, 경제/비즈니스, 과학/환경, 이렇게 이 세 가지 범주와 여섯 세목은 대단히 넓은 스펙트럼인 것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흥미로운 외신이 있다면 이 범주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포기(누락)하시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이것은 각자 알아서 할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저도 그렇고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과학이나 경제, 세계라는 항목은 매우 큰 범용성을 가지고 있고요. 오히려 이러한 범주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저희가 매우 다양한 내용의 글들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각자가 그 분야에 자신들의 전문성과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저작권: 좋은 일이 때론 불법일 수도 있다
- 앞서 외국어 기사를 번역하고 ‘요약’한다는 것이 갖는 지적인 가치와 노고를 언급했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저작권법상 이런 원저작물에 관한 번역과 요약 배포행위가 ‘공정한 이용’의 범주에 속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판단하시는지요? 지금으로선 현실적인 논란 가능성이 아주 적지만, 혹여 ‘뉴페’가 큰 매체로 성장했을 때 불거질 수 있는 저작권 시비에 관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염려되는 마음으로 질문해 봅니다.
맞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저작권은 저희가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고민해온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한 한가지 대답으로 먼저, 최근 하버드 로스쿨의 요하이 벤클러 교수와의 인터뷰 중 그의 의견을 인용하겠습니다.
“당신의 일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먼저, 그 일이 불법(illegal)인가? 그렇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만약 당신이 사실(fact)만을 기록한다면, 그것은 괜찮다. 그러나 기사를 요약한다면, 그 일은 파생된 작품(derivative work)으로 분류되고,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범위에 포함된다.
두 번째, 그 일이 뉴욕타임즈에게 해를 끼치는가? 그렇지 않다. 그 일은 나쁜 일(wrong)인가? 당신이 그 기사가 뉴욕타임즈의 것이라는 것을 밝히는 한,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단지 불법일 뿐이다.
우리의 모든 삶이 법적 판단 위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과 법적 판단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당신의 작업은 이런 영역에 속해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뉴욕타임즈가 공식적인 한국어판을 발행하고 있고, 당신이 그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요하이 벤클러)
한편, 이것이 저작권의 분명한 침해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판사는 “공정이용(Fair Use)”의 네 가지 요소를 고려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네 가지 요소란, ‘사용 목적’, ‘원작의 성격’, ‘인용의 비율’, ‘원작자에게 끼친 피해의 여부’입니다.
1) ‘사용 목적’에서는 우리가 원작물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가를 따지며 2) ‘원작의 성격’에서는 뉴스의 본질은 보도이기 때문에 창작물에 비해서는 저작권의 범위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인용의 비율’에서는 사용한 원문의 분량과 원문 속 표현을 문제 삼게 되는데, 저희는 요약을 통해 이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원작자에게 끼친 피해의 여부’는, 해당 외신이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하거나, 또는 한국 측 동업자가 있을 때 특별한 주의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문을 구했던 여러 변호사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요. 최근, 좀 더 자세한 자문 결과를 주었던 한 변호사는 ‘실제 법적 다툼이 발생하더라도 기존의 언론이 탄탄한 논거를 들이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다소 저희 쪽에 우호적인 결론을 내려주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는 저희를 포함한 여러 큐레이션, 그리고 뉴스 애그리게이터(News aggregator)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문제일 겁니다. 한편, 문제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저희가 기존 유명 매체의 글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때로 외국에서 화제가 된 블로그의 글이나 소규모 온라인 매체의 글도 선택합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오히려 그들에게서 다른 반응을 얻습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학계를 떠나는 한 박사과정 학생의 뜨거운 질타”라는 글은 블로그에 익명으로 올라온 글이지만, 후에 그 글을 쓴 학생과 연락이 되었고, 제가 그의 글이 한국에서도 많이 읽혔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표했습니다. 물론 항상 이런 식의 우호적인 반응을 얻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으며, 사후 처리가 불법의 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도 아닐 겁니다. 단지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또, 저작권 자체에 대한 논란들도 있습니다. 과도한 저작권이 전체의 이익을 저해하는 예들은 많이 있습니다.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2009)에는 세분화된 권리가 다수의 유익을 방해하는 ‘미사용(underuse)’이라는 개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때, 땅을 소유하는 것은 그 땅의 지하와 땅 위의 하늘을 모두 소유하는 것(소유권 기둥)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믿음이 계속 제도로 유지되었다면, 비행기는 자신이 통과하는 모든 하늘의 소유자들에게 통행세를 내야 하고 하늘을 날 수 없었을 겁니다. 이런 일이 중세 독일의 라인 강에서는 실제로 벌어졌었습니다. 저작권의 경우에도 유익한 영문기사가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인해 다른 언어의 사용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인류 전체의 손해일 수 있습니다.
즉, 법적 판단이라는 것도, 당연히,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입니다. 신기술이 구제도와 부딪힐 때, 이 때문에 형성된 대중의 공감대는 새로운 판결을 낳게 되고, 이를 통해 제도는 다시 정비될 수 있습니다. 단지 저희는 이 모든 변화를 기다리기에 앞서 저희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미리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확신은 결과와 무관하게 후회를 낳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일이 저작권에 위배되는지는 칼로 베듯이 명확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과 저희는 단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혹시나 저희에게 발생할지 모르는 수익이 있을 때 저희가 전달하는 외신들과 이를 적절히 배분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나가겠다는 것입니다.
## 노동과 대가: 돈 안되는 일을 하는 이유
- 하루에 글 여섯 개를 꾸준히 발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요되는 ‘뉴페’ 팀의 노동시간을 모두 합치면 어림잡아 평균 몇 시간 정도가 될까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 같습니다. 평균적으로 각자 매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는 사용할 것 같습니다.
- 딱히 사이트가 운영되는 모습을 보면 물적 대가가 즉각적으로 보상되는 체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시사인 기사를 쓴 ‘임정욱’ 님 표현을 빌리면, 하버드 박사와 방송사 국제부 기자의 ‘고급 두뇌’가 왜 이런 돈도 안 되는 일을 하고 계신가요?
한 가지 대답은, 내가 필요를 느꼈던 서비스를 다른 사람도 필요로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매우 즐겁다는 겁니다. 이런 생각은 소박하게나마 ‘스타트 업’정신과도 연결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훨씬 더 좋은 의도로, 저희보다 더 힘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런 즐거움을 얻기 힘들었던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고, 그런 면에서 저희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즐거움으로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선택한 기사를 다른 사람들도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역시 각자가 이 일을 하게 만드는 하나의 보상이자 동기가 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 모두가 종종 하는 말이지만, 자기 분야의 기사를 매일 찾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자기 일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 있습니다. 또, 영어로 된 원문을 우리말로 옮길 때 영어 및 우리말에 대한 훈련이 되기도 하고요. 물론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야 하고, 일반적으로 이런 노동에 돈으로 보상을 주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여기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던지, 그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직은 각자의 선의나 타인의 인정에 따른 보람 같은 것들에 의해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바뀔 수 있습니다.
- 물질적 대가와 정신적 보상을 굳이 나눈다면, 물적 대가가 생길 가능성은 있는지요? 혹은 그런 가능성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지요?
앞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위의 저작권 문제와 함께, 모든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저희 같은 서비스가 대가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게는, 광고, 기부, 회원제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고요.
아무래도 광고가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광고를 달아본 적은 없고, 어느 정도의 수익이 생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부는 위키피디아가 쓰고 있는 방법이고, 선의가 선의로 보답 받는 상당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회원제는, 굳이 예를 들자면, 유료회원들과 무료회원들에게 시차를 준다든지, 유료회원은 팟캐스트같은 더 편리한 방법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구별을 할 수 있습니다.
또는 현재의 서비스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다른 방식으로 수익을 찾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책을 낸다든지, 또는 좀 더 전문화된 내용을 회사들을 대상으로 공급한다든지, 아니면 IFLS(과학이 졸라 최고야)처럼 티셔츠나 머그잔을 팔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직은 모두 아이디어 단계에 불과합니다.
사실 수익화나 물적 대가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는 아주 많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어떤 물건/서비스를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는 것은 그 물건 혹은 서비스가 대체로 이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한다는 뜻일 겁니다. 성공한 제품은 그만큼 사람들의 삶의 질이나 만족도를 향상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공자는 그 제품의 적절한 대가를 취함으로써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모두에게 더 큰 유익을 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과정은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보이기 때문에 정당화라는 말 자체가 어폐로 보이기도 합니다. 단지, 저희가 그 정도의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정신적인 보상을 통해 물적 대가의 잠재적 획득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하겠습니다만, 현실적인 기준에서 (아마도) 이렇게 돈도 안 되는 일, 시간은 꽤 잡아 먹는 일을 하면서 쓰는 시간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우선 이 일이 저희의 정체성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곧,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자신에게 질문할 때, 자신이 하는 일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 가지 더 말할 수 있는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고요.
한편으로는 제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최초의 문제의식이었던 ‘내 시간을 절약하고 싶다는’ 의도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불특정 다수가 기사를 번역해서 올리고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형식의 플랫폼으로 만들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짧은 뉴스의 경우 그런 형식이 더 적합하며, 클리앙의 새소식 게시판이 아주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봅니다. 물론 저작권의 문제는 계속 있을 수 있고, 지금 저희가 가지는 ‘선별’, 곧 큐레이션의 의미는 사라지며, 재미있는 또는 선정적인 기사들이 주로 읽히게 되는, 기존의 문제가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적어도 지금까지는, 저와 다른 분들 모두,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에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정도의, 충분한 의미가 있습니다.
## “하고 싶은 일인지 알려면 해보는 수밖에 없다”
-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끔 집사람이 제 글이 좋다고 말해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 ‘뉴페’와 같은 매체 활동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인지는 실제로 해보아야 알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해보시길 바랍니다.
- 슬로우뉴스는 종종 읽으시는지요? 충고와 격려 한 마디 부탁합니다.
물론 자주 읽습니다. 슬로우뉴스가 지향하는 바에도 동의하며 매우 뛰어난 분들이 매우 가치 있는 내용을 만들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슬로우뉴스의 다양한 시도들이 다른 대안매체들의 길잡이가 되리라 믿습니다.
- 슬로우뉴스와 ‘뉴페’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유사성보다 훨씬 더 많은 차이점 역시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상호 자극과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협업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데요. 효석 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물론 좋습니다. 슬로우뉴스가 가지고 있는 자체 협업 방식에도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미약하나마 저희의 능력이 필요하실 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여하겠습니다.
- 1년 뒤, 5년 뒤, 10년 뒤 뉴페의 모습을 전망해본다면요?
일단은, 지금 이대로의 형태라도 그때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끝으로 못다 한 말씀이 있으면 부탁합니다.
서면 인터뷰를 너무 오래 끌어서 민노씨께 볼 낯이 없습니다. 글이 길어서 혹시나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뉴스페퍼민트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RRA